사람과 사람

성룡 월량대표아적심 가수 등려군을 사랑하면서 아내 임봉교와 결혼하고 애까지 낳은 이유 왜?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3. 29. 23:11

오늘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 마지막 앵커브리핑 코너에서 등려군의 대표곡 '월량대표아적심' 얘기를 꺼내 등려군에 대한 관심이 또다시 뜨겁게 일고 있습니다.


'첨밀밀' OST로 사후 다음 세대에 알려졌던 등려군인데요. 대만의 국민가수로서 사망한 지 23년이 지나도록 중국과 대만에서 최고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신비의 가수 등려군에 대해 좀 알아볼게요.



대만의 가수 등려군, 중국 발음으로 덩리쥔은 은 1953년 1월 29일에 태어났습니다. 오늘날까지 살아 있었다면 만 65세가 되는 나이로 참 일찍 세상을 떠났죠. 1965년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데뷔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끼와 재능이 다분했다는 얘기겠죠.


등려군은 대만에서 출생했지만, 양친이 모두 중국 대륙 출신입니다. 1940년대,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보아 부모가 중국 대륙의 공산화를 반대해서 대만으로 쫓겨온 것이겠죠. 실제로 등려군의 아버지는 장개석의 국민혁명군에 속해 있었습니다.



대만과 중국은 같은 만다린어를 쓰는 만큼, 서로 통일을 해야 하는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그런 이유로 1970~1980년 문화혁명의 서슬이 푸르던 시절에도 등려군의 노래는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공산주의 정신을 흐리는 노래라고 당국이 아무리 단속을 해도 단속을 하는 공안요원들조차 들었다고 할 정도였죠. 오늘 손석희 앵커가 말한 대로 불법복제 테이프가 2억 개 이상 팔려나갔고, 심지어 공산당 당수로 자신의 우상화 작업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시진핑 현 주석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등려군의 노래를 들었다고 했죠.


옛날 속담으로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청아한 목소리로 당시 대만은 물론,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등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등려군이에요.



등려군은 성룡이 기억하는 필생의 연인으로도 유명한데요. 1980년대 초반에 등려군이 미국 활동을 하던 때 두 사람이 만났는데, 등려군은 교제를 부인했다고 합니다. 설령 사귄 게 맞다면, 성룡이 유흥을 즐기는 외향적인 성격에다 여성 편력이 심하고, 등려군은 집에 조용히 침잠하는 성격이라 헤어졌을 거라고 합니다.



당시 성룡은 어쨌든 등려군을 마음에 두었으면서도 엄청난 요망주였던 임봉교와 사귀면서 아이를 낳습니다. 뭐 여튼 성룡은 참하고 곱고 목소리 예쁜 등려군을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라고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이렇듯 아름다운 목소리로 대륙을 사로잡았던 등려군은 1995년 5월 8일에 급사를 맞이합니다. 태국 치앙마이의 한 호텔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인데, 등려군의 사망원인은 공식적으로 천식 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데 이게, 등려군이 중국 출신의 대만인인 점, 천안문 사태 때 중국 민주화 운동 곁에 선 점이 겹쳐서 중국 당국에 의한 암살설, 혹은 마약 과용설 등 온갖 루머가 퍼졌다고 해요. 온갖 음모론이 퍼질 수밖에 없는 조건의 등려군이었죠.


생전 천주교도로 세례명이 테레사였다고 하구요. 테레사 텡으로 중국 외 지역에서 활동했던 등려군, 온갖 신비를 다 남기고 떠난 가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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