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비디오스타 현진영, 월매출 1억 쇼핑몰 CEO 아내 오서운과의 러브스토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1. 30. 19:12

1990년대 오빠 현진영이 1월 30일 밤에 방영되는 '비디오 스타: 황금개띠판 특집! 우리가 접수할개'에 출연합니다. 1992년에 '흐린 기억 속의 그대'라는 메가 히트곡으로 반짝반짝 빛나다가 인생의 파란만장을 겪고 2010년대 중반 들어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벌여서 반가움을 안겨주고 있는 현진영이죠.


현진영이 누구인지, 어떤 활동을 했으며 곡절을 겪어왔는지, 아내와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까지 이 참에 한번 알아볼까 싶어요.



 1  SM 1호 가수

현진영은 1971년 2월 3일에 태어났습니다. 나이는 마흔여덟 살이지만 생일이 빨라 띠로는 개띠인 것이죠. 본명은 허현석이구요. 아버지가 대한민국 1세대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고 허병찬 님이시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현진영이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마저 건강이 좋지 않아 이른 나이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현진영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태원을 주름 잡는 춤꾼으로 활동했는데요. 당시 박남정, 이주노, 강원래, 구준엽, 박진영 등과 이태원에서 용쟁호투를 벌이다가 이수만의 눈에 띄어 이수만이 최초로 프로듀싱한 뮤지션이 됩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SM 1호 뮤지션인 것이죠. 1990년에 1집을 발표하는데, 정통성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으나 한국에 거의 최초로 힙합이라는 장르와 문화를 소개했다고 할 수 있죠. 



 2  전성기 후 찾아온 시련

현진영과 와와라는 그룹으로 발표한 1집에서 '슬픈 마네킹'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대박은 2집에서 났죠. 지금 들어도 완성도와 세련됨이 뒤지지 않는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큰 히트를 치면서 대 스타가 됩니다. 당시 '흐린 기억 속의 그대'처럼 느린 전주로 나오다가 빨라지는 노래들이 쏟아졌다고도 합니다.


'현진영 go 진영 go'란 노래에서 자신의 이름을 넣어 후렴구를 만드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도 하구요. 조금 뒤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풍이 워낙 거세기는 했지만, 듀스와 함께 1990년대 랩 뮤지션으로 찬란하게 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1993년 '두근두근 쿵쿵'이라는 히트곡이 포함된 3집으로 화려한 인기를 이어갈 것만 같던 현진영은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이 되면서 가파른 추락의 길을 걷습니다. 1995년에 같은 혐의로 또 한 번 체포를 당하고 말죠. 1990년대 말에 몸이 100킬로그램이 훨씬 넘는 모습으로 나타나 팬들을 놀라게 한 현진영, 끝이 없을 것 같은 그의 추락에 영혼의 짝이 날아듭니다.

 


 3  월매출 1억 CEO 아내 오서운과의 스토리 

1977년생인 여섯 살 연하 아내 오서운과의 만남은 현진영의 운명을 바꿔놓았습니다. 2000년에 현진영의 인생이 가장 바닥을 치고 있을 때 만났는데, 모델 겸 배우로 활동 중이었다고 하죠. 이 아내 오서운 씨와의 만남으로 현진영은 진심을 다해 갱생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습니다.


약물중독의 후유증 때문이었는지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힘겨워하던 현진영이 순천향대학교 정신과에 입원하도록 스스로 결심한 것도 오서운의 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안쓰러운 모습에 모성애를 느껴서 시작한 사이라고 하지만, 가장 힘들었을 적의 현진영을 옆에서 지킨 오서운의 사랑은 정말 대단하죠.



두 사람은 오랜 연애와 함께 사는 생활 끝에 2011년에는 혼인신고를, 2013년에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비디오 스타'에서도 밝힌다고 하는데, 개띠 해의 목표는 아이를 갖는 것이어서 시험관 시술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인 오서운은 월 매출이 1억이나 한다는 씨이니쓰의 CEO로서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최근 뮤지션으로도 활발하게 뛰기 시작한 현진영, '무념무상'이라는 노래를 위해 서울역에서 한 달간이나 노숙자로 살아보았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요. 또 누구보다도 폐해를 잘 알기에 마약퇴치 운동에도 열심인 현진영, 음악활동도 열심히 해주시고, 올해 원하시는 자녀 꼭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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